[문장으로 읽는 책] 머리맡에 두고 읽는 시
아, 이 반가운 것은 무엇인가/ 이 히수무레하고 부드럽고 수수하고 슴슴한 것은 무엇인가/ 겨울밤 쩡하니 닉은 통티미국을 좋아하고 얼얼한 댕추가루를 좋아하고 싱싱한 산꿩의 고기를 좋아하고/ 그리고 담배 내음새 탄수 내음새 또 수육을 삶는 육수국 내음새 자욱한 더북한 삿방 쩔쩔 끓는 아르궅을 좋아하는 이것은 무엇인가/ 이 조용한 마을과 이 마을의 으젓한 사람들과 살틀하니 친한 것은 무엇인가/ 이 그지없이 고담하고 소박한 것은 무엇인가 김용택 『머리맡에 두고 읽는 시-백석』 ‘섬진강 시인’ 김용택이 고르고 단상을 곁들인 다섯 권의 시선집이 나왔다. 그중 백석 편에 실린 ‘국수’의 끝부분이다. 밥보다 면을 좋아하는 ‘국수주의자’들이라면 더욱 맘이 동할 ‘국수 예찬’. 김용택은 ‘국수 다섯 그릇’이라 불렸던 아버지 얘기를 들려준다. 제사상 유언으로, 다른 것은 차리지 말고 국수를 다섯 그릇 차려달라는 말을 남겼단다. 가난한 서민성의 온기가 몽글몽글 피어나는 시의 마지막 행 ‘이 그지없이 고담하고 소박한 것은 무엇인가’를 책의 부제로 세웠다. “오늘 저녁 이 좁다란 방의 흰 바람벽에/어쩐지 쓸쓸한 것만이 오고 간다”로 시작되는 시 ‘흰 바람벽이 있어’를 소개하면서는 “이 시가 우리에게 있어서 우리의 시가, 우리의 삶이 가난하지 않게 되었다. 이 시를 읽으면 마음이 가득 차올라 나는 금세 부자가 되었다”고 썼다. “하눌이 이 세상을 내일 적에 그가 가장 귀해하고 사랑하는 것들은 모두/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란 구절이 특히 유명한 시다. 양성희 / 중앙일보 칼럼니스트문장으로 읽는 책 머리맡 육수국 내음새 담배 내음새 국수 예찬